새 글터 '복하천에는 악어가 산다'를 시작하며...


   딱따구리가 잠을 깨웠다. 요즈음은 아침마다 열대 정글에서나 울 것 같은 새 소리가 들렸었는데, 오늘 아침 손님은 딱따구리다. 이천으로 이사 와서는 매일 뒤뜰에 놀러 오는 새들의 수다를 듣는다. 우리 건물 뒤뜰(내 뜰은 아니지만)에는 뒷집 키 작은 소나무밭이 있고 소나무밭 뒤로 고목 두 그루가 있다. 고목 근처에 다양한 새들이 모여 아침에 한 번, 해 질 녘에 한 번, 떠들어 댄다. 까치는 고목 높은 곳에 앉아 고양이나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경고를 한다.  까치는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고양이를 금세 발견하고 높고 짧은 소리를 낸다.


   창문은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열고 잤고, 어제부터는 모기장을 치고 문을 활짝 열고 잔다. 한동안 분사형 모기약을 뿌려 놓고 환기를 한 후 창만 열고 잤는데, 이제는 창과 문을 다 열고 자야 할 만큼 날이 더워졌다. 낮에도 문에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게 망사 커튼을 쳐놨는데, 드나드는 틈에 함께 들어오는 벌레까지 막을 수는 없다. 창의 방충망을 열어 놓고 도로 나가라고 해도 뭐가 좋은지 계속 방에 머무는 녀석들도 있다. 먹을 것도 없는데.


   국민학교 시절, 집에 책이 꽤 많았다. 삼촌댁에도 책이 많아서 사촌들과 오랜만에 만났어도 밖에 나가 놀기보다 각자 책 한 권씩 챙겨 들고 편한 자리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6학년쯤에는 집에 있던 어린이를 위한 책을 다 읽고 어른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백경', '나는 고양이다',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들이었다. 한글이니까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여 성인이 되고 다시 읽은 책도 많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지만, 나의 책 읽기는 계속됐다. 서점에는 문고판이 가득했고 버스에서, 공원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었다. '샘터'를 읽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소로'의 '월든 숲'을 읽고 있을 때 우리 형제들은 수락산 자락에 살았다. 아버지가 별장을 지어 놓은 곳에서. 학교가 계동(서울 종로구)에 있어서 통학 거리가 꽤 되었지만, 나는 산에서 지내는 시간이 좋아서 평일에도 조퇴하고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월든' 이야기는 그 시절 내 생활과 비슷해서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뼈에 새겨주었다고 할까... 낚시를 하든 자전거를 타든 산에 오르든 사진을 찍든 내게는 그 행위보다 내가 선 자리의 공기와 느낌이 더 소중하다. 그게 좋았기에 남들 다 공부하는 시간에 조퇴하고 텅 빈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도망갔었을 거다.

   음악 관련한 일이 직업이라 평생 기타 연습하고 곡 만들고 편곡하며 지냈다. 가끔 다른 일도 해봤으나 결국 원래 일로 돌아오곤 했다. 예순 초반이 되니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하느님 곁에 가는 길에 올라 본 터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다. 운이 나쁘면 담배 사러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서도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까.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삶의 대부분이 부질없다는 걸 느낀 사람이 많을 거다. 여러 목적과 계획을 세우고 나름의 가치를 따지는 삶도 즐겁겠지만, 나는 옛날 수락산 자락에 살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위대한 자연과 함께하며 낮은 자세로 감사하며 사는 삶으로. 커다랗고 넓은 별장에 살기보다 어디든 세우고 묵을 수 있는 작은 승합차(다마스 같은)를 타고 세계여행하는 것. 이게 앞으로의 내 꿈이고 더 늙었을 때 보고픈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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