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 줄 알았지 2

작년 겨울 끝자락에 재미없는 일이 생겨서 속이 많이 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해야 옳지만 속마음까지 속이고 일하다 사달이 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일단 하기로 하면 최선을 다 한다.
일을 의뢰한 분이 어깨가 당당하도록.
내가 만든 것 때문에 창피하지 않도록.
있는 기술 없는 기술 다 동원하고 마침표를 찍어서 결과물을 보낸다.

애써 만든 작품에 태클이 들어오면 얇은 두께의 내 참을성은 한계를 드러낸다.
깊이 숨었던 자존심도 덩달아 튀어나온다.
물론 나도 모든 걸 다 잘하지 못한다.
나도 내가 잘 못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잘 못하는 것을 콕 집어낸다.

내 탓이다.

처음엔 내 능력이 미천한 게 들통나서 화가 났고,
나중엔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게 너무 병신 같아서 온몸의 힘이 쭉 빠져버렸다.
의뢰인과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선불이 관행인 업계에서 후불로 일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수금도 납품하지 않은 것도 없다.
나 혼자 상황 종료!

속상한 마음에 기타 연습을 중단했다.
그러잖아도 느는 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이 참에 연습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자는 생각이었다.
매일 붙들고 살던 기타를 놓아버렸더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도 직업이 기타 선생이니 매일 강의실을 기계적으로 오갔다.
하지만 집에 와서 할 일이 없었다.
기타 쟁이가 기타를 놓았으니까.
날이 차가우니 밖에 나가 놀 수도 없었다.
매일 저녁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와 넷플릭스 드라마로 밤을 지새웠다.
재미있다고 알려진 드라마를 거의 훑고 나니 어느새 봄이 와있었다.

몸이 무거워지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지탱하기 힘들다는 신호다.
몇 달 동안 먹고 보고, 또 먹고 보고를 계속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난 몸이 안 좋아졌다 싶으면 자전거를 탄다.
전에 쓰러졌다가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온 후, 자전거 타기로 회복했다.

내 20인치 미니벨로는 보정동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 삼천리 자전거(지금은 폐점)에서 중고로 샀다.
자전거값 5만 원 + 안장 높이려고 긴 봉(싯포스트) 추가 5천 원 = 5만 5천 원.
자물쇠(와이어 키)도 주셔서 여태 감사히 잘 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밖에 세워두었던 자전거.
타이어도 갈고 앞 바구니도 달아줬다.
일단 주말에만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집에서 1km 정도 가면 도로변 물길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있다.
작은 물(신둔천)이 개천(복하천)이 되어 남한강까지 이어진다.
천천히 달리며 왕복거리를 늘려갔다.

나처럼 천천히 경치 즐기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미니벨로가 딱이다.
미니벨로도 속도를 올려서 탈 수 있지만 하드웨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나는 항상 시속 10km에서 15km 사이로 다니기에 함께 타는 사람들이 답답해한다.
시속 20km 가까이 속도를 올리면 도로 상태와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쏟느라 주변 둘러볼 여유가 없다.
빨리 달리기...... 한강, 분당천에서 위험한 라이딩족을 많이 봤기에 난 그렇게 달리지 않는다.

나는 미니벨로 타다가 언덕길을 만나면 무조건 내려서 끌고 올라간다.
3단 앞기어가 달려있던 철TB로는 어느 정도 언덕까지는 가능했었는데, 뒷기어만 있는 내 자전거로는 불가능.
물론 내 자전거 뒷기어에도 낮은 기어가 있지만 내 저질체력이 원인.

어느 날, 자전거 타고 낚시 갔다 돌아오는 길.
긴 언덕길을 내려서 끌고 가고 있는데 뒤에서 찌르릉 소리가 났다.
길 가장자리로 비켰더니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노인네 힘도 좋네...하며 가만히 보니 페달을 밟지 않고 가고 있다.
오잉? 전기자전거?
전기자전거는 몇년 전에 봤는데, 가격도 비쌌고, 내가 타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서 바로 잊었었다.

음...
이천에서 시골길로 여기저기 다니려면 전기자전거도 좋은 선택이겠구나.
갈 때는 내 힘으로 가고 돌아올 때는 전기의 도움을 받고.
멀리 갈 수도 있겠다.
언덕을 오르며 지름신과 타협을 마쳤다.



웹에 있는 전기자전거 모임에서 공부 시작.
코로나 2년 동안 전기자전거로 배달알바.
비싼 접이식 전기자전거 두 동강 남.
앞에 모터가 있는 전기자전거도 있음.
파스 방식과 스로틀 방식이 있는데, 보험이 애매해서 조심해야 함.
집 근처의 대리점에서 사는 게 A/S에 유리함.
20인치를 많이 탐.
배터리 용량, 무게, 바퀴 두께 등 따져볼 게 많음.

난 20인치 미니벨로가 있으니 바퀴 큰 걸로.
전국에 대리점 많은 메이커로.
비포장길도 갈 것이니 튼튼한 것.
낚시짐이 많으니 짐받이가 있는 것.
배터리는 10A 이상.
내게 맞게 조건을 좁히다보니
메이커는 삼천리자전거, 스타일은 MTB, 바퀴는 26인치,
파스 1단으로 약110km, 스로틀 겸용인 팬텀 HX로 결론이 났다.

이천에는 전국 판매왕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이 있다.
집에서 5km.
항상 이용하는 자전거도로 옆, 이마트 뒤 언덕 너머에 있다.
미니벨로에 바구니 달아주었던 그 대리점.
자전거 타러 가면서 방문.
웹에 재고가 없는 팬텀 HX가 두 대나 있었다.
역시! 판매왕이십니다.
매장에 있는 20인치 접이식도 보고 조금 더 비싼 기종도 봤지만 점찍어 놓은 HX로 결정.
(다 좋은데 배터리가 국산이 아닌 것 같음 - 현재까지 문제없음)
집으로 배달 부탁하고 자전거 타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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